리히텐슈타인은 알프스 산맥에 자리한 작은 공국이지만, 수도 파두츠 외에도 개성과 매력을 지닌 소도시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발저, 트리젠, 에셰나는 각각 전통과 역사, 그리고 현대적 생활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작은 나라의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이번 글은 이 세 도시를 여행하며 경험한 자연과 건축, 현지 음식과 축제를 담아낸 후기다.
발저: 알프스의 관문에서 만난 전통과 풍경
발저는 리히텐슈타인 남부에 위치한 국경 마을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잇는 교통 요지다. 마을에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전통 목조건물과 꽃으로 장식된 발코니였다. 소박하면서도 정돈된 마을의 풍경은 알프스 산맥의 배경과 어우러져, 여행자가 기대하던 알프스 마을의 정취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는 언덕 위에 자리한 발저 교회였다. 작은 규모지만 내부에는 중세 프레스코화가 보존되어 있어, 신앙과 예술이 조화된 공간임을 보여주었다. 교회 옆 전망대에서는 스위스 알프스와 라인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이 풍경은 사진으로 담기에는 부족할 만큼 장엄했다.
발저는 하이킹 명소로도 유명하다. 현지인들과 함께 숲길을 걷다 보면 목동과 소들이 풀을 뜯는 풍경을 쉽게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장면은 관광지라기보다 ‘삶의 일상’에 가까웠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발저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알프스 전통 생활문화가 살아 있는 현장이다.
마을의 작은 식당에서 맛본 리벨라(Rivella)라는 현지 음료와 치즈 요리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발저의 음식은 화려하지 않지만 신선한 재료와 단순한 조리법이 특징이며, 알프스 생활의 소박한 미학을 전한다.
트리젠: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
트리젠은 리히텐슈타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로, 12세기 기록에도 등장한다. 이 마을의 중심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마망 교회가 서 있는데, 견고한 석조 건축물이 오랜 세월을 버텨온 역사를 보여준다.
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농가와 석조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마치 중세 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주민들이 전통을 일상 속에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집에서는 손수 건조한 허브와 수제 치즈를 판매하며, 이는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 느껴졌다.
트리젠의 또 다른 매력은 와인이다. 이곳은 오랜 포도 재배 전통을 자랑하며, 가을철에는 와인 축제가 열린다. 운 좋게도 짧게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을 광장에는 현지 와이너리가 직접 준비한 와인과 음식을 나누며 주민과 여행객이 함께 어울렸다. 그 순간은 마치 큰 가족 모임에 초대된 듯 따뜻하고 진솔했다.
문화적으로도 트리젠은 풍부하다. 작은 갤러리에서는 리히텐슈타인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고, 공공 미술이 마을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전문가적 시각에서 트리젠은 단순히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평가할 수 있다.
에셰나: 자연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소도시
에셰나는 리히텐슈타인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공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했지만 자연과 긴밀히 연결된 도시다. 도심은 현대적 상점과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푸른 초원과 산길이 펼쳐진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에셰나 삼림공원이었다. 이곳은 가족 단위 방문객이 즐겨 찾는 휴식처로, 산책로와 작은 호수가 마련되어 있었다. 공원에서 만난 현지 가족은 여행객에게 직접 만든 치즈빵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따뜻한 환대는 소도시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에셰나는 스포츠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여름에는 산악 자전거와 하이킹, 겨울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인기를 끈다. 이처럼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 에셰나는 여행자에게 활력과 여유를 동시에 선사한다.
또한 에셰나는 리히텐슈타인의 음식 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도시다. 작은 레스토랑에서 맛본 전통 요리 케세쾨뉘플레(Käsknöpfle)는 치즈와 양파가 어우러진 따뜻한 음식으로, 알프스 특유의 풍부한 맛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리히텐슈타인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발저, 트리젠, 에셰나는 각각 다른 색채를 지닌 소도시였다. 발저는 알프스 전통 생활을 보여주었고, 트리젠은 역사와 와인 문화로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에셰나는 현대적 도시 기능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볼 때, 리히텐슈타인의 소도시 여행은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삶의 본질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작은 나라지만 각 도시가 개성과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여행자는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문화 속에 잠시 머무는 체험자가 된다.
리히텐슈타인을 찾는다면 수도 파두츠에서의 짧은 체류에 만족하지 말고, 소도시로 발걸음을 넓히길 권한다. 그곳에서야말로 진정한 리히텐슈타인의 매력과, 알프스 속 작은 나라가 지닌 특별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