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의 푸른 바다 위에 자리한 앤티가 바부다는 화려한 리조트와 백사장으로 유명하지만, 그 속에는 관광지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진짜 삶의 향기가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북부의 작은 어촌 마을을 방문하며, 그곳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진짜 앤티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해변, 어부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집집마다 울려 퍼지는 레게 음악까지 — 그 모든 풍경이 문화이자 예술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직접 체험한 앤티가 북부 어촌의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카리브의 아침, 바다와 함께 시작되는 하루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해변가에서 하루는 시작됩니다. 북부 어촌의 하늘은 말 그대로 ‘청명’이라는 단어가 완벽히 어울리는 푸르름이었습니다. 바다에서는 이미 어부들이 배를 띄우고 있었고, 해변 가까이서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며 어부들의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어부의 초대를 받아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이 마을에서 40년째 어업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었습니다.
배가 바다로 나아가자, 바람이 얼굴을 스쳤습니다. 다니엘은 “이곳의 바다는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가족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어업은 이 마을의 중심이자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작은 통발을 바다에 던지며 조심스레 물결을 읽었고, 그 순간마다 그의 눈빛에는 오랜 세월의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1시간쯤 지나자 통발에는 싱싱한 붉은색 바다가재와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 잡혔습니다. 그들은 잡은 생선을 마을로 가져와 해변 시장에서 판매하고, 일부는 집에서 저녁식사로 나눴습니다. 그렇게 바다는 그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공동체를 이어주는 끈이었습니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모여 작은 북을 두드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웃으며 “저 소리는 우리 조상의 노래야. 어업의 노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습니다. 파도와 리듬이 하나로 섞이는 그 풍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시장, 앤티가의 일상 속 문화
정오 무렵, 저는 마을 중심의 작은 시장을 찾았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이 섬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시장 입구에는 향긋한 코코넛 향이 퍼졌고, 한쪽에서는 신선한 해산물과 열대과일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상인들은 모두 밝은 미소로 “Morning!”이라 인사하며, 여행자를 가족처럼 맞이했습니다.
저는 ‘마리’라는 상인에게서 코코넛 워터를 한 병 샀습니다. 그녀는 3대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손님이 아닌 친구를 맞이해요. 이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루를 나누는 곳이죠.” 그녀의 말대로 시장은 마을 사람들의 중심이었습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을 나누는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시장 한편에서는 즉석 요리 코너가 열렸습니다. 이곳에서는 ‘페퍼팟(Pepperpot)’이라는 앤티가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각종 채소와 고기를 카리브 향신료와 함께 끓여내는 요리로, 약간 매콤하면서도 깊은 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지인들은 점심시간마다 이 음식을 즐긴다고 합니다. “페퍼팟을 먹으면 하루가 힘이 나!”라고 웃던 청년의 말처럼, 음식은 그들의 활력을 상징하는 문화이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시장을 나올 때, 거리에서는 자그마한 밴드가 즉흥적으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레게 리듬에 맞춰 사람들은 자연스레 몸을 흔들며 웃고, 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손뼉을 쳤습니다. 여행자인 저도 어느새 그들의 리듬 속으로 녹아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곳에서 문화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석양 속의 공동체, 저녁이 주는 따뜻한 이야기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마을은 하루의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해변가에서는 어부들이 다시 모여 그날의 조업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은 나무로 만든 작은 배를 물 위에 띄우며 놀았습니다. 저는 다니엘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의 집은 해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목조주택이었고, 부엌에서는 신선한 해산물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의 가족은 식사 전 기도를 올리고, “오늘의 바다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 말에는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 자연과 공존하려는 이들의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식사로 나온 음식은 직접 잡은 생선으로 만든 카리브식 스튜였습니다. 향신료의 풍미가 가득했고, 그 맛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하루의 노동과 감사가 담긴 ‘이야기’ 같았습니다.
식사 후, 마을 사람들은 해변가에 모여 저녁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북, 기타, 그리고 손뼉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단순하지만 강렬했습니다. 저는 모래 위에 앉아 그들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을이 바다를 붉게 물들일 때, 음악은 더욱 깊어졌고 사람들의 표정은 평화로웠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잔잔히 밀려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이곳의 문화는 화려한 무대나 큰 공연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기적’이라는 것을요.
북부 어촌에서 보낸 며칠 동안, 저는 관광객이 아닌 ‘손님’으로 이곳을 경험했습니다. 이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바다와 노래, 음식으로 하루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리조트 대신, 사람들의 미소와 파도소리가 남은 여행 — 그것이 바로 앤티가의 진짜 문화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진정한 카리브의 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앤티가 북부 어촌으로 떠나보세요. 그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그 느림 속에서 삶의 본질이 보일 것입니다.